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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직관적인 사고

Mariana Muntean, Cinevva CEO

Mariana Muntean with classmates during a 48 hours game jam in Houston 20182018년 휴스턴에서 열린 48시간 game jam에서 동기들과 함께

AI는 사실상 순수한 논리와 계산 능력을 흔한 상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가 떠받들던 능력들, 암산, 패턴 인식, 복잡한 알고리즘을 끈질기게 풀어내는 능력, 이 모든 걸 이제 AI가 한다. 더 빠르게, 더 잘, 지치지도 않고. 그래도 우리가 그걸 알아야 할까? 당연히 그렇다. 하지만 인식은 바뀐다. 이제 모두가 새로운 시대에 맞춰가야 한다. 직관적인 상호작용과 결과의 시대 말이다.

NVIDIA CEO 젠슨 황에 따르면, 이제 중요한 건 "분위기"를 감지하고 데이터가 나타나기 전에 모퉁이 너머를 내다보는 능력이다. 기술적 소양과 깊은 공감이 만나는 지점. 실리콘이 닿을 수 없는 직관적인 이해.

그만큼 신뢰받는 사람이 내 인생 전체의 궤적을 이렇게까지 직접적으로 인정해주는 말을 한 적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SAT, 그리고 나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시스템

몇 년 전 나는 SAT를 봤고 떨어졌다.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다시 보지도 않았다. 그 모든 게 근본적으로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었고, 사람들이 아무리 그냥 더 열심히 공부해서 다시 보라고 해도 그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맞았다고 생각한다.

SAT는 미국 교육 시스템을 위해 설계됐다.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 함의는 깊다. 미국 고등학교는 특정한 패턴, 문제 유형, 문제를 구성하는 방식에 맞춰 가르친다.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그런 식의 표준화 시험에 푹 절어서 자란다. SAT를 칠 무렵이면 그 리듬이 이미 몸에 배어 있다.

국제 학생에게는 그런 이점이 없다. 우리는 교육 철학이 다른 시스템에서 왔다. 유럽 학교는 폭보다 깊이를, 객관식보다 논술형 시험을, 답안지보다 구술 시험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 시스템에는 자체 표준화 시험이 있지만, 다른 것을 다른 방식으로 측정한다. 남미, 아프리카, 중동의 교육 전통도 각자의 논리를 지니고 있다.

국제 학생을 SAT 앞에 떨어뜨려 놓으면, 단지 그 사람의 지식을 시험하는 게 아니다. 낯선 시험 문화에 얼마나 빨리 적응하면서 동시에 내용을 얼마나 잘 익혔는지를 보여줄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학업 능력만큼이나 문화적 적응 능력을 시험하는 셈이다.

나는 여름 한 철 동안 이걸 준비해서 만점에 가깝게 받아낼 거라 기대받았다. 시험 문화 한 세트를 통째로 배우고, 내 교육적 본능을 버리고, 미국 입학 사정관을 감동시킬 수준으로 해내라는 거였다. 그것도 몇 달 만에.

나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어릴 때는 다른 방식으로 똑똑하다. 직관적인 방식으로. 그때 나는 나 자신을 위한 길을 내고 있었다. 정확히 왜 그러는지 말로 설명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내 안의 무언가가 알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내 것이 아니라는 걸.

대신 창작의 실을 따라가다

나는 게임 개발과 디자인을 공부했다. 창의력과 시각 효과로 사람들이 직접 플레이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가상 세계를 만든다는 발상이 좋았기 때문이다. 예술과 기술이 만나는 지점, 이야기와 상호작용이 만나는 지점이 좋았다.

내가 발견한 것은 충격적이었다.

게임에는 진지한 기술적 깊이가 필요하다. 물리 시뮬레이션, 충돌 감지, 벡터 수학, 조명 계산, 최적화. 이건 들어가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수학과 공학은 게임 개발의 장애물이 아니다. 게임이 작동하게 만드는 일부다.

문제는 창작의 비전과 구현 사이의 간극이었다. 업계를 지배하는 엔진과 도구들은 엔지니어가 엔지니어를 위해 설계한 것이었다. 모든 게 "if"와 "then", 그리고 노드 기반 블루프린트로 돌아갔다. 소용돌이 효과를 원한다고? 셰이더 프로그래밍을 배워라. 특정한 조명 분위기를 원한다고? 머티리얼 그래프를 파고들어라. 캐릭터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길 원한다고? 캐릭터 컨트롤러나 물리 파라미터를 몇 시간씩 디버깅해라.

당신이 시각적인 사람이라면, 생생한 색과 움직이는 이미지로 생각한다면, 아이디어가 소리와 질감과 감정의 무게까지 갖춘 완성된 장면으로 떠오른다면, 그 모든 걸 일단 기술 언어로 번역해야만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할 수 있었다. 머릿속에 조명과 분위기, 캐릭터가 공간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방식까지 완성된 세계가 보인다. 그러고는 컴퓨터 앞에 앉아 다음 여섯 시간 동안 왜 캐릭터가 바닥을 뚫고 떨어지는지를 디버깅하며 보낸다.

기술적 토대는 중요하다. 하지만 도구들은 창작자가 그 복잡성을 추상화해 치워버리는 대신 구현 세부사항 속에서 살게 만들었다. 게임 제작은 이야기를 들려주거나,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영화를 연출하는 것처럼 느껴져야 한다. 그게 이 매체의 마법이다. 그런데 그건 시작하기도 전에 공학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영화감독은 자기 비전을 표현하기 위해 물리 엔진을 몇 년씩 배우지 않는다. 예산과, 기술적 실행을 맡아줄 팀을 받는다. 하지만 인디 게임 개발에서는 예산이 있는 경우가 드물다. 당신이 가진 건 시간과 도구에 대한 접근권뿐이다. 그리고 당신이 기술적인 사람이라면, 끝내주는 게임을 만들 수 있다. 단, 그럴 때만.

이렇게 해서 Limbo 같은 작품이 나왔다. 작은 팀이 하나의 독특한 예술적 비전과 그것을 실행할 기술적 역량을 갖추고 만든 게임이다. 또는 Undertale, 창의적 직관과 프로그래밍 능력의 적절한 조합을 마침 갖춘 한 사람이 거의 혼자 만든 게임이다. 또는 Stardew Valley, Eric Barone이 픽셀 아트부터 작곡, C# 프로그래밍까지 모든 걸 몇 년에 걸쳐 독학한 게임이다.

이 게임들은 엄청난 역경을 뚫고 성공했다. 하지만 Limbo 하나당, 도구가 창작자가 갖출 수 없는 기술적 능숙함을 요구하는 바람에 사라진 창작의 비전이 수백만 개는 있다. 인디 게임 개발자 중 의미 있는 성공을 거두는 사람은 3%도 안 된다. "if"와 "then"의 벽에 부딪혀 포기한 창작자들 때문에 끝내 만들어지지 못한 멋진 게임은 또 얼마나 많을까?

진입 장벽은 창의력이 아니었다. 도구 자체에 내장된 기술적 문지기였다.

원래 있었어야 할 것을 만들다

그래서 5년 전 나는 다른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제안은 단순했다. 게임 개발은 창의적 비전을 가진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한다. 상호작용 매체로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컴퓨터 공학 학위가 필요해서는 안 된다. 도구가 창의적인 사람들이 실제로 생각하는 방식에 맞춰야지, 그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Sequoia, Pear, Draper를 비롯한 수십 곳의 VC들이 안 될 거라고 했다. B2C라서. 시장이 없어서. 인디 개발자들은 아무것도 결제하지 않아서. 능력을 희생하지 않고는 게임 개발을 단순화할 수 없어서. 게이머는 복잡한 게임을 원하고, 복잡한 게임에는 복잡한 도구가 필요해서. 시장 분석으로 포장된 수백만 가지 변명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미쳤다고 했다.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계속 같은 질문으로 돌아왔다. 왜 수백만 달러짜리 예산이 창의적 표현의 전제 조건이어야 하는가? 영화감독과 유명 게임 프로듀서에게는 팀과 자원이 있다. 나머지 모두에게는 코드 에디터 하나와 기도 한 마디뿐이다. 나는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을 만들고 싶었다. 원하는 걸 설명하면, 그게 눈앞에서 일어난다. 내 안의 모든 부분이 이게 옳다는 걸 알았다. 온몸의 모든 세포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오늘날 수천 명이 매일 Cinevva로 3D 게임 에셋, 게임, 음악, 레벨, 경험을 만든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프로젝트의 조회수는 수백만에 이른다. 매일같이 늘어난다. Sand Hill Road를 향한 2분짜리 피치는 "나는 SAT에 떨어졌지만 내 직관을 믿어달라"에 딱 맞는 형식은 아니다.

직관이 진짜 의미하는 것

이 한 말은 단지 철학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무엇이 가치 있는 지능을 이루는가에 대한 진짜 변화를 묘사하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우리는 잘못된 것을 위해 최적화했다. 암기와 계산에 보상을 주는 교육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전에 본 문제와의 패턴 일치를 측정하는 표준화 시험을 설계했다. 4년간의 학문적 문지기를 견뎌냈음을 증명하는 자격증을 보고 사람을 채용했다. AI는 그 모든 걸 그저 덜 특별하게 만들어버렸다.

AI가 할 수 없는 것은, 적어도 아직은, 무엇이 빠졌는지를 감지하는 것이다. 뭔가 어긋났을 때 그걸 느끼는 것. 사람들이 스스로 말로 표현하기도 전에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직관하는 것. 분위기를 읽는 것. 어떤 데이터셋에도 담기지 않은 맥락을 이해하는 것.

나는 내 시간, 국제적인 삶의 경험, 돈, 그리고 직관적인 지식을 Cinevva를 만드는 데 쏟아부었다. 이건 대학에서 얻기 어려운 조합이다. SAT로 시험하기 어렵다. AI가 순수한 인지적 처리 능력을 흔하게 만들기 전에 설계된 어떤 자격증 체계로도 담아내기 어렵다.

16년 혹은 20년 전, 컴퓨터 과학자들이 도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를 결정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자신들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다. 나머지 우리는 거기에 적응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 시대는 끝나가고 있다. 다음에 올 것을 만들어갈 사람들은 인간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이해하는 사람들이다. 무언가 잘못됐을 때와 옳을 때를 느낄 수 있는 사람들. 기술적 우아함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만드는 사람들.

나는 시스템이 가치 없다고 말한 내 안의 무언가를 믿었다. 그리고 내가 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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